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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륵(彌勒)의 시대(時代)'는 오고 있는가?

불타오르고 있는 익산의 미륵사

미륵(彌勒)의 시대(時代)란 무엇인가?
근래 후천개벽(後天開闢)이니 정도령이니 뭐니해서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필자는 미륵의 시대를 한 사람이 만인을 이끄는 시대가 아닌 "모든 생명체(生命體) 각자(各自) 자각(自覺)의 시대(時代)"라고 명칭(名稱)하고 싶다. 즉, 생명체 각자가 자기의 본성(本性)을 알아서 "더불어 살아가는 생명들의 시대"라 말하고 싶다.

자아(自我)의 신성(神性)을 발견(發見)한 생명(生命)은 이미 자타(自他)의 구분(區分)이 없을 것이요, 현상계적(現象界的) 언어(言語)로서의 타아(他我)의 신성(神性)을 알 것이니 여기에서 다른 어떤 관념(觀念)이 발생(發生)하겠는가?

미륵(彌勒)의 시대를 현세(現世)에 구현(具現)하기 위하여 창건(創建)한 미륵사는 전북 익산시(益山市) 금마면(金馬面) 기양리(箕陽里) 미륵산(彌勒山)아래에 위치한 절터이다.
절은 백제(百濟) 무왕(武王,재위600-640)이 왕비인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을 가는 도중에 이곳 연못에서 용출(湧出)한 미륵삼존(彌勒三尊)을 배관한 뒤 절을 창건(創建)했다한다.

삼국유사(三國遺事) 무왕조에 기록된 미륵사 관련 기사를 보면 다음과 같다.
하루는 왕과 부인이 사자사(師子寺)에 행차했다. 용화산(龍華山) 아래 큰 못가에 이르렀을 때 문득 미륵삼존(彌勒三尊)이 못 가운데서 나타나므로 왕과 부인이 행차를 멈추고 미륵삼존께 경의를 표하였다. 부인이 왕에게 말하기를 "부디 큰 절을 이곳에 창건하는 것이 저의 큰 소원입니다. 허락하여 주십시오." 하니 왕이 허락했다. 이어서 지명(知命) 스님을 찾아가 그 못을 메울 방법을 의논했더니 스님이 신통력(神通力)으로 하룻밤만에 산을 허물어 그 흙으로 못을 메우고 평지로 만들었다. 이에 미륵삼회(彌勒三會)를 법상(法象)으로 하여 전(殿) 탑(塔) 랑(廊) 무( )를 각각 세 곳에 짓고 미륵사라고 이름지었다.

17세기 후반 폐사된 이래 사람들의 관심에서 오랫동안 잊혀졌던 미륵사지에 대한 발굴(發掘)과 복원(復元)은 1966년부터 시작(始作)되어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바 발굴결과 신라(新羅)의 경주 황룡사지(黃龍寺止)보다 더 큰 가람(伽藍)임이 밝혀졌고, 그 배치도 <미륵하생경>에 묘사된 용화세계(龍華世界)를 압축(壓縮)하여 절을 지었음이 밝혀졌다. 즉 미륵사의 가람배치는 전체적으로 3탑 3금당을 갖추고 있으며, 탑과 금당을 기본 단위로 3곳에 배치된 각각의 구역은 독자적 사찰의 배치형태를 보이면서도 동시에 회랑에 의해 서로 연결되며 강당을 공유하여 전체적인 구도 속에 탑과 금당 등을 배치하였다.

근래(近來)들어 이 미륵사가 생기(生氣)의 실체(實體)를 보이기 시작(始作)하였다.
금당지(金堂止)와 목탑지(木塔止) 그리고 강당지(講堂止)가 그 현상(現象)의 진원지이다.

그리고 그 소응(召應)하는 곳이 하늘의 가운데 자리이니 어찌 미륵(彌勒)의 시대(時代)가 시작(始作)되었다고 아니할 수 있겠는가?

미륵(彌勒)의 성품(性品)을 알려는 자들이여!
익산의 미륵사로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