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으로

◆ 해인풍수도(海印風水道)의 본향(本鄕)

서산 간월도 간월암

'해인(海印)'이란 무엇인가?
해인이란 부처님께서 얻은 삼매(三昧)의 이름이다. 큰 바다가 일체(一切)의 사물(事物)을 인상(印象)함과 같이 심연(深淵)한 불(佛)의 지혜(智慧)로 일체의 법(法)을 인현(印顯)하는 것이다. 보적경(寶積經) 이십오에 "대해(大海)는 일체의 중류(衆流)가 모두 그 안에 유입(流入)함과 같이 일체의 제법(諸法)도 법인(法印) 가운데 들어오는 것이 이와 같다.

이러므로 해인이라 한다" 하였으며, 환원관(還源觀)에 "해인이란 말은 진여(眞如)의 본각(本覺)이다. 망(妄)이 진(盡)하면 마음이 맑아지며 만상(萬象)이 일제히 나타나서 마치 대해(大海)가 바람을 따라 물결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만약 바람이 지식(止息)하면 바닷물도 가라앉아 맑으니 나타나지 않는 상(像)이 없다" 하였다.

간월암(看月庵) 이곳에서 수행(修行) 중이던 무학(無學)이 바다 위에 뜬 달을 보고 해인(海印)의 묘리(妙理)를 깨달았다고 해서 간월이란 이름을 갖게 된 암자이다.

이곳은 백제(百濟) 때부터 피안도(彼岸島)라 불려와 본래 그 성(聖)스러움을 발(發)하던 땅이었다.
이 해인의 도(道)가 이조(李朝)의 배불정책(排佛政策) 등으로 그 맥(脈)이 끊긴 지 수백여년 해인의 도는 근세(近世)의 대자유인(大自由人) 경허(鏡虛)에 의해 되살아났고, 경허의 수법제자인 만공(滿空)스님은 무학의 종지(宗旨)를 되살리고자는 뜻을 갖고 벽초(璧超)스님에게 폐사된 간월암을 중창하게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은 아시는 분이 많을 것이다.

벽초(碧超) 경선(鏡禪) 스님은 어떤 분이신가?
만공스님으로부터 해인풍수도(海印風水島)를 물려받아 해인풍수도(海印風水道)의 법맥(法脈)을 계승(繼承)하신 분이시다.

열반(涅槃)하셔서야 자유인(自由人)이었음을 입증(立證)시키신 분이요. 열반 후(後) 대행보현보살(大行普賢菩薩)의 화신(化身)으로 추앙(推仰)받으시는 분이다.

생전(生前)에 덕숭총림(德崇叢林)의 방장(方丈)으로 추대(推戴)되어 주석하시면서도 스님에게는 언어도 하나의 '티'였는가? "나는 아무 것도 아는 것이 없으니 법문(法文)을 할 수 없다" 하시며 일평생(一平生) 단 한 번도 법상(法上)에 올라 법문(法文)을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시고 오직 몸으로만 가르침을 주시고 가신 분으로 참으로 자유인(自由人)이란 무엇이며, 참으로 안다는 것이란 무엇이며, 참 공부란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신 분이시다.

'선농일여(禪農一如)'의 참뜻을 몸으로써 깨우쳐 주신 분, 보고 듣는 것이 모두 공부라던 스님의 말씀은 참 공부의 실상(實相)을 그대로 드러내었었다.

간월암에는 이 모든 분들의 해인의 풍수도가 그대로 녹아있다.

바다 위에 핀 연꽃 한 송이!
간월암은 그 자체(自體)로 해인(海印)이다.

붇다의
무위(無爲)의 인(印)!
해인풍수도(海印風水道)의
용무생사(用無生死)의 경지(境地)로 인하여
바다 위에 핀 연꽃 한 송이인
유위법(有爲法)인 해인(海印)으로
전법(傳法)되어 가고 있구나!

간월암의 해인풍수의 도는 벽초(碧超) 스님이 입적(入寂) 시(時) 그 제자(弟子)중 혜우(慧雨) 선사(禪師)를 손가락 끝으로 지목(指目)함으로써 혜우 선사에게 전법(傳法)되었다.
혜우대선사님은 2000년 초 필자와의 대담 중 필자에게 "네 마음먹은 대로 되리라!"라고 덕담을 해주신 바 있다.

근래(近來)에 간월도에 방조제(防潮堤)가 생겼다.
해인의 세계, 피안(彼岸)의 세계(世界)에 도달(到達)하는 것이 그 만큼 쉬워졌는가?